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1980 년대 중반 뉴욕에서 26세에 2천만 달러란 큰돈을 손에 쥔 청년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햄프턴 러틀런드. 주식으로 큰돈을 번 그는 그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사찰로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그가 십여 년 뒤 뉴욕으로 돌아와 사람들을 또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삶의 방식을 180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의 젊은 부자들은 죄다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갖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미네랄워터를 마신다. 스테이크 대신 콩 식품을 먹는다. 체육관에서 몸을 단련하여 뚱뚱해지지 않는다.’ 햄프턴도 그렇게 생활했었다. 그런데 뉴욕에서 모습을 감춘 사이에 완전히 변했다.

그가 뉴욕에 다시 나타났을 때, 햄프턴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옛날보다 20㎏이나 살이 쪄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대고, 맥주와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으며, 하얀 기름이 붙어 있는 쇠고기를 먹어치웠다.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햄프턴에게 “몸에 해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햄프턴의 대답이 걸작이다. “몸에 좋다, 나쁘다고 하며 신경 쓰는 것이 지겹지도 않나. 지방질도 없고 염분도 없으면 맛도 없잖아. 누구나 언젠가 죽게 마련인데, 그렇게 몸을 소중히 여겨 뭘 하겠다는 건가?”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햄프턴을 보고 친구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학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어떤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즐거운 삶이란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이라는 점을. ‘고생해서 큰돈 벌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진정 즐거운가?’ 그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자 신이 한때 그런 생활을 경험했기에 그들의 기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금욕적인 생활을 즐거워하지 않았다. 햄프턴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즐기지 못하는 인생은 가치가 없다’는 점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햄프턴이 직접 몸으로 주장하는 인생관과 삶의 방식에 그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그는 다시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가 됐다.남자가 삶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도락과 취미의 다른 점은 바로 절도에 있다. 절도가 있는 것은 취미이며, 절도가 없는 것은 도락이라고 나는 구별한다. 아마 햄프턴은 좌절을 경험하고 도락적인 삶의 방식에 눈을 뜬 것이리라. 그는 남자들의 3대 도락이라고 할 수 있는 ‘술, 도박, 여자’에 가까운 세계에서 살았지만, 도락의 세계는 좀더 범위가 넓다. 클래식 카에 몰두하거나 골동품에 푹 빠지는 것도 나무랄 데 없는 도락이다.

도락을 즐기는 삶에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즐겁고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선 때로 일탈된 행위도 필요하다. 그러면 지금까지 몰랐던 삶의 방식을 알 수 있게 된다. 다이어트에 열중하던 사람이 살이 쪄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것이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닌 것은, 자신이 중시하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꼬치고기를 어항에 넣고 유리벽으로 반을 막아놓으면 꼬치고기는 절반의 공간에서만 헤엄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유리벽을 치워도 반대쪽에는 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갈 수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이 삶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예는 수없이 많다.

동심을 가져야 삶을 즐길 수 있다
즐기며 사는 삶이 일에 몰두하며 사는 삶보다 가치 있다. 삶을 즐기려면 동심을 가져야 한다. 유희를 즐길 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바로 천진무구하게 한마음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동심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아이의 마음’에서 인생을 출발한다. 성장하면서 ‘성인의 마음’을 갖게 된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된다. 교류분석이란 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이 세 가지 마음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아이를 대할 때는 부모의 마음으로 대한다. 일을 할 때나 연인과 얘기할 때는 성인의 마음이다.

문제는 아이의 마음을 성인이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아이들과 함께 유희를 즐길 때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모든 유희를 아이의 마음으로 즐겨보는 것이다. 가령 연인과 장난칠 때, 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이라면 어른의 마음과는 다른 순수한 면이 살아난다. 일할 때도 아이의 마음으로 사심 없이 몰두하는 편이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다. 성인의 마음이면 불순한 요소가 들어가기 쉽다. 또한 아이들은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 성인의 마음을 갖기 시작하는 소년소녀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심부름 값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탁을 들어주는 자기 자신에게 감동을 느끼기 위해 자진해서 심부름을 맡아한다. “엄마, 내가 갈게. 날 보내줘”라고 보채는 사심 없는 의욕이야말로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킨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인류 역사에 남을 위대한 발명과 발견이 대부분 남자에 의해 이루어진 이유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자가 소외되어 왔기 때문’이란 설에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의 마음을 갖기 쉽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신빙성이 높아진다.

여자는 사춘기가 지나면 아이를 낳는 성性, 기르는 성으로서 성인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에 지배된다. 아이의 마음은 엄마란 역할에는 적절하지 않다. 한편 투쟁하며 살아가는 남자는 성인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만 갖고 있으면 지나치게 거칠어져서 곤란하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도 주어진다. 섭리가 작용해 ‘어차피 투쟁하며 살아가려면 아이의 마음으로 하라’는 자연의 배려가 남자에게 베풀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작가 시부사와 다쓰히코는 말한다. “어른들의 속박에서 해방된 자유롭고 자기도취적인 아이들의 세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에 머무르는 아이들의 유희의 세계는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황금시대이다.”

여유가 남자의 품격을 만든다
요 즘 남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삶을 즐기는 마음’이 아닐까. 난 절실하게 그 점을 느끼고 있다. 분명히 돈은 중요하다.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며 열심히 주식을 사고팔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내며 나 자신도 일확천금을 거머쥐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여유도 아름다움도 찾아볼 수 없다.

여자에게 인기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욕망은 즉물적이며 조금의 정서도 느낄 수 없다. 섹스의 대상을 찾는 것과 진정한 연애는 다르지 않을까. 오랜만에 아침 통근시간에 전철을 탔다. 그런데 피곤에 절은 얼굴로 서둘러 빈 자리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한심하단 생각을 넘어 연민의 정을 느꼈다. 파김치가 되도록 일에 쫓겨 살다보니 피곤했으리라. 또한 인간관계에 신경 쓰다보니 마음도 지쳐버렸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오기로라도 버텨냈으면 좋겠다. 밝은 표정으로 노인들과 여성에게 좌석을 양보해주면 어떨까. 그것이 남자의 품격이며 삶을 즐기는 자세 아닐까.

여유가 없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근무 태도를 봐도,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알 수 있다.물론 살다보면 일에 정열을 바쳐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여유를 잃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래서야 어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집만 피우면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여유가 없는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만다. 자동차 핸들에도 ‘여유 각도’라는 것이 있듯 운전할 때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인생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또한 여자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여유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기에 매력도 있는 것이다. 매력이 있으므로 품격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품격을 갖춘 남자에게 남자도, 여자도, 그리고 행운조차 따라오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서둘러 집지 않는다.” 이것이 품격이다. 남자들이여, 여유를 찾고 허리를 쭉 펴라! 느긋한 마음가짐이 남자의 품격과 품성을 갈고닦아 준다.

이 글은 <남자의 품격>의 일부를 발췌, 요약한 글입니다.